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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화폐-보석 로드(여행) 스테이블 코인까지 ~5,000 Years of Trust: From Sapphires to Stablecoins

dais3 2025. 6. 27. 16:19

사파이어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5000년의 신뢰

원화는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디지털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생존여부), 보석은 문명과 시대를 넘는다.
그래서 디지털이 아닌 시대에도, 화폐가 무너진 순간에도, 보석은 ‘지속 가능한 신뢰 자산’으로 생존해왔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글로벌 신뢰를 차지하는 지금, 원화보다 보석이 더 유연한 생존력을 보여준 셈이다?

오늘날 보석은 화폐인가, 아니면 '플렉스(flex)’—과시와 상징의 수단인가?

보석은 ‘보이기 위해’ 변형했고, 화폐는 ‘사라지기 위해' 끊임없이 갈망했다.

그 비밀을 5천년의 데이터로 지금부터 파헤친다.

 

🪨 돌이 어떻게 보석으로의 가치를 갖게 되었나?

 

MZ세대는 보석이나 명품을 활용해 MZ세대는 

플렉스 💡 과시하다, 뽐내다를 의미하는 신조어. “이번에 명품 플렉스 했다!” 같은 표현을 자주 쓰며, 스우파 💃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여성 댄서 경연 예능.인기와 함께 패션, 표현, 정체성의 강조라는 흐름과도 연결된다. 도 인기를 끌고 있다.

 

📑 목차
  1. ⏩소개
  2. ⏩여행루트 —💰여행자금
  3. ⏩‘제국’여정
  4. ⏩마르코 폴로는 왜 원나라 대도(베이징)까지 갔을까?
  5. ⏩지역별 실제 보석 무역
  6. ⏩화폐 코드
  7. ⏩힘의 세계화 vs. Now
  8. ⏩화폐의 세계화 -13C vs. Now
  9. ⏩스테이블코인 vs. 알트코인
  10. ⏩보석과 코인가치 비교

 

 

세계여행의 동방을 담은 《동방견문록》은 단순한 13세기의 여행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 보석 채굴지와 생산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귀중한 1차 사료로서, 실크로드를 통한 보석의 흐름(산지 → 중계무역 → 소비지)이 시대적 배경과 함께 잘 드러난다.
그 보석과 달리, 마르코 폴로가 받은 금패+지폐(교초)+문서는 황제의 명령을 증명하는 ‘신뢰 기반 증표’였다. 이는 오늘날의 스테이블 코인처럼, 권위와 신뢰를 담아 여행자에게 실제 효력을 발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보석은 더 이상 ‘화폐’가 아니며,
대부분 보여지는 ‘자산’, ‘상징’, 그리고 ‘플렉스’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오늘날 보석은 통화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치의 상징이자 사회적 언어다.
그리고, 화폐는 더 이상 ‘얼마짜리냐’가 아니라, ‘얼마나 신뢰받느냐’의 문제이다.
이제는 한 나라가 돈의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화폐는 이제 가격이 아니라 ‘신뢰의 연합’이다. 사용자 개인이든 기업이든, 플랫폼이 함께 믿는 순간 돈이 된다.”

사파이어에서 스테이블 코인 [💰 달러에 연동되어 가격이 안정된 암호화폐]까지 화폐의 진화는 암호화폐의 알고리즘과 수학을 만나 컴퓨터의 비트로 된 (BTC, ETH) 코인이 생겼다. 국가마다 스테이블 코인을 법정화폐+블록체인으로 USDT, DAI 등으로 보장된 신뢰’를 넣으려는 시도이다. 이는 스테이블 코인은 “정부 신뢰” + “민간 연합 신뢰”의 혼합체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소개

바로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한 세계 최초 첫 지폐(본위제)사용과 보석의 가치가 널리 쓰인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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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는 왜 보이지 않게 되었는가? 요즘 보석은 점점 보이게 되었나?

화폐의 시작은 ‘보이는 것’이었다. 인간은 ‘가치’를 교환해야 했다.
가장 먼저 선택된 것은 곡물, 가축, 조개, 보석. 그중에서도 보석은 특별했다 그러나,
보석은 무거웠고, 계산은 복잡했다
그래서 인간은 보석보다 측정 가능한 귀금속으로 눈을 돌렸다. 은, 금, 동은 녹여서 일정 무게로 주조하면 통일된 가치 단위가 되었다 (고대 리디아(지금의 튀르키예 서부): 세계 최초의 주화, 일렉트럼 동전 주조; 로마의 데나리우스 ; 한나라의 오수전 → 거래를 단순화시킴)
“이때부터 화폐는 ‘보이는 신뢰’

 

📜 실물 없는 약속, 지폐의 등장

13세기, 몽골 제국은 은화 대신 교초(交鈔) 마르코 폴로, 유럽인들은 "종이로 만든 화폐"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최초의 지폐 단일화 정책(최초의 지폐,송시대의 교자(交子)와 달리) 최초의 국제적 기축통화로서 의의,은 1냥 = 교초 2관의 고정 환율을 유지하고, 위조자 사형 등라는 지폐를 만들었다. 이는 실물 금속 없이도 중앙정부의 권위만으로 유통되는 화폐였다. 종이 한 장이 금덩이의 무게를 대체한 순간 (베네치아의 유대 상인은 어음을 만들어, 사람과 금이 함께 움직이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해짐)..

그런데 지금은?
신용카드 → 전자결제 → 모바일 송금 → 스테이블코인·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점점 눈에 안 보이는 디지털 자산이 되었다.

💍

돌들 중에서 선택받은 보석도 ‘비화폐 화폐’였다

  • 금·은처럼 보석도 화폐 이전의 교환 수단이자 자산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어, 특히 다이아몬드·루비·에메랄드는 중세부터 왕족 간의 외교 선물·전쟁 보상 등으로도 쓰였다. 즉, 보석은 화폐가 생기기 전부터,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치의 상징’이자 포터블 자산이었다.

(화폐와 달리), 지금의 보석은

  • 📌 SNS 시대에선 보석은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측면이 강해졌다. 명품 반지, 하이 주얼리, 커스텀 펜던트는 ‘보이기 위한 가치’를 가짐, K-pop 아이돌의 치장, 래퍼들의 목걸이 플렉스, 인플루언서들이 보여주는 ‘럭셔리 라이프’, 웨딩 반지의 과시적 소비화 등

⤵여행루트& 💰여행자금

마르코 폴로의 여행루트는 이탈리아,그리스,이스라엘,튀르키예,이란 중동 여행~ 원나라, 북경 도착지까지 3년이 걸린 여정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중국)에 도착하는 데 3년 6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동방견문록'에 기록되어 있다.

💰여행자금은 어떻게 충당했나?

  • 이탈리아(베네치아) 상인들이 당시 몽골이 점령한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과 활발히 교역 중이라서 교역을 통한 충당, 처음부터 자금이 없었던 건 아니다.
  • 니콜로와 마페오는 베네치아 출신의 상류 무역상 집안이었고, 당시 금융-무역 복합 활동을 했다.
  • 콘스탄티노플에서 보석이나 귀금속을 투자물로 들고 출발해 흑해 연안 도시에서 교역하며 자금을 늘렸다.
  • 무자본 여행은 아니었고, 교역으로 자금을 운영하며 이동한 것이다.

📰돈과 보석 외에도 “공식적 후원”과 “문서”

  •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받는 외교 사절 또는 관리 역할을 맡으며, 여행 동안 현지에서 숙식이나 교통에 대해 왕실의 지원을 받았다.
  • 특히 금패(金牌, paiza)라는 몽골 제국의 특수 여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제국 내 어디서든 식량과 말, 숙소 등을 제공받을 수 있는 특권을 의미한다.
  • 그 덕분에 거대한 제국 내에서는 현금 없이도 여행이 가능했고, 국경을 넘을 때도 안전이 보장됐다.

신뢰에 기반한 간접 화폐

항목 마르코 폴로의 금패+ 교초·문서 보석 (당시 실물자산) 스테이블 코인
보증 주체 쿠빌라이 칸 (황제 권력) 실물 희소성, 교역 네트워크 자산 + 민간 신뢰
용도 통행권, 조달권, 물자 확보 고가치 교환, 선물, 신분 표시 실물 자산 + 민간 신뢰 연합
핵심 가치 황제의 명령과 권위 눈에 보이는 물리적가치(희귀성) 1:1 자산 연동 + 신뢰
기능 ‘권위의 위임장’,신분·권한인증서 ‘가치 저장 수단’ ‘가치의 위임장’, 디지털 신뢰 증표
신뢰 방식 중앙 권력의 명령과 상벌 시스템 희소성과 교역자 간 전통적 신뢰 시장 참여자 간 분산된 신뢰 시스템

몽골 제국이 발행한 지폐, ‘교초(交鈔)’,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외교문서와 칸의 칙령”이 곧 자금처럼 기능했다.

  • 《동방견문록》에서도 마르코는 “황제가 종이 한 장으로 금과 은보다 더 강한 힘을 행사한다”

왜 여행이 오래걸렸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현재의 베이징)까지의 거리는 육로로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해야 했으며, 그 길이는 약 6,400km에 달했기 때문이다.
* 험난한 지형과 환경: 마르코 폴로 일행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 이란 고원, 파미르 고원, 고비 사막 등 다양한 험난한 지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 지역들은 기후 변화가 심하고 물과 식량 확보가 어려웠으며, 때로는 위험한 야생동물이나 도적떼의 위협도 있었다.
* 당시에는 현대와 같은 교통수단이 없었으므로, 주로 낙타나 말 등을 이용한 육로 이동에 의존해야 했다. 이는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릴 수밖에 없었고,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거나 보급품을 채워야 했다.
*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던 시기는 몽골 제국이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던 때였지만, 각 지역마다 정치적 상황이 다르고 때로는 통행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필요한 서류나 허가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 마르코 폴로는 단순히 이동만 한 것이 아니라, 중간 경유지에서 교역 활동을 하거나 현지 문물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마르코 폴로 일행은 3년이 넘는 긴 시간 끝에 원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의 여정과 실제 보석 무역 경로 (1271–1275)

실크로드 = 비단 + 향신료 + 보석의 대동맥

이 당시에서는 각 지역에서 실제 채굴·거래되던 보석 종류와 무역 네트워크의 역할이 중요했다. 보석 (희소성 기반의 가치 저장)
→ 금·은 (측정 가능한 가치로의 진화) → 금속 화폐 (통제 가능한 교환수단) → 지폐 & 디지털 화폐 (신뢰 기반의 확장된 통화)

오늘날 명품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보석 원석의 산지는 대부분 마르코 폴로 시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지역에서 나온다.

 

보석 종류 마르코 폴로 시대 산지 오늘날 사용처 및 브랜드 연결
비취 (Jade) 중국, 호탄, 신장: 펨·처천 등 중앙아시아 강에서 채취 → 중국 귀족층의 진귀품 Cartier, Bvlgari – 고급 동양풍 디자인에서 사용
청금석(라피스 라줄리) 아프가니스탄 바다크샨 산맥, 최고급 안료 산지 Dior, Van Cleef & Arpels – 인레이 장식 및 고급 워치
루비 버마(미얀마), 인도 : 귀환 당시 베네치아에서 의복 속 보석 폭로 Graff, Harry Winston – 최고급 ‘피전 블러드’ 루비 사용
사파이어 스리랑카, 인도 Tiffany & Co., Chopard – 블루 사파이어 하이라이트
진주 페르시아만, 남중국해 Mikimoto, Tasaki – 천연 해수 진주 명가들
다이아몬드 인도 골콘다 산지에서 채굴, 독특한 채집 방식과 전설 포함 → 남아공, 러시아로 전환 De Beers, Tiffany, Cartier – 모두 최고급 다이아몬드 브랜드

📚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다음 보석들이 언급된다:
비취(Jade): 중국에서 귀하게 여겨지는 보석진주(Pearl): 남중국해와 페르시아만에서 수입루비(Ruby), 사파이어(Sapphire): 인도에서 원산지로 소개라피스 라줄리: “푸른 보석”으로 언급한다

🟦 비취 (Jade)
호탄(Khotan), 펨(Pem), 처천(Cherchen)
“They passed through Khotan, where the divers bring up jade from the rivers, white jade and black jade, and green jade veined with gold.”
“…in the rivers of Pem province were found ‘stones called jasper and chalcedony in plenty’—a reference to jade.”
호탄과 펨, 처천 등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화이트·블랙·그린 비취가 풍부하게 채굴됨을 기록 이 비취들은 이후 중국으로 수출되어 고대부터 중국 귀족 계층의 진귀품이었음

🟦 청금석 (Lapis Lazuli)
예: 바다크샨(Badakhshan), 샤마르칸트 등
“There are mountains in which likewise are found veins of lapis lazuli the stone which yields the azure color (ultramarine), here the finest in the world.”
현대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크샨은 최고급 청금석 산지로, 무척 중요한 교역품이었으며 ‘울트라마린’(최고급 청색 안료) 생산에 쓰였음“priceless rubies and the finest lapis lazuli”

Lapis Lazuli

🟦 루비/사파이어/기타 준보석
예: 귀금속 컬렉션 관련 전설화된 언급
“When they had their old padded suits brought … they ripped open these garments, whereupon an incredible display of ‘rubies, sapphires, carbuncles, emeralds, and diamonds’ poured out before the dazzled company.”
베네치아 귀환을 증명하기 위해 의복 속에 숨겨온 방대한 보석들을 공개했다는 후일담당시 얼마나 많은 귀금석이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줌

🟦 다이아몬드 (Diamond)
골콘다(Golconda)
“Marco passed through the famous valley of Golconda [near modern Hyderabad], from whence came … the largest and most beautiful diamonds in the world.”
그와 함께 동반된 ‘독수리들(이글)이 고기 조각에 달라붙어 다이아몬드를 떨어뜨린다’는 고대-중세 전설이 언급됨.
~ 인도 남부의 골콘다는 세계 최고급 다이아몬드 산지로, 다이아몬드 채굴 방식과 설화가 함께 전해짐

⤵제국들의 여정 (3년 6개월 간)

🏁 이탈리아 – 베네치아, 유럽 보석 무역의 출발지로써,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 니콜로와 삼촌 마페오와 함께 베네치아를 출발한다.
베네치아 두캇(ducat)화폐로 주요 교역품 유리공예, 직물을 거래했으며, 배를 타고 아드리아 해를 건너 그리스로 향함..
무역의 중심지로 유럽에서 동방 보석이 들어오는 관문인,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 보석들을 아시아로 가져가기도 하고, 동방 보석을 유럽에 판매했다. 자수정 (독일, 프랑스산) 루비, 사파이어 (동방에서 수입) 진주 (페르시아만, 인도산)
🇬🇷 그리스 (비잔티움 제국): 보석 가공의 전초기지
동서 무역 중계지이며, 보석 커팅·세공 기술 발전으로, 동방에서 온 보석은 이 지역에서 컷팅 또는 가공 후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에메랄드 (이집트, 인도산), 사파이어 (스리랑카 → 인도 → 서아시아 경유)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성지): 진주와 홍옥수의 교역지
항구 아크레(Acre)에서, 십자군 이후 유럽 상인들이 이 지역을 통해 동방 보석을 들여옴, 진주 (바레인, 페르시아만 → 지중해), 홍옥수(카넬리안): 예멘, 인도에서 이슬람 상인을 통해 도착했다.
🇹🇷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보석 교차로
콘야, 트라브존 도시들 등에서, 무역로 역할: 이란/인도/중앙아시아에서 오는 보석이 유럽으로 향할 때 필수 통로로써, 터키석(Turquoise): 사실은 이란산이지만, 유럽에서는 '터키를 통해 들어온 돌'이라 명명, 석류석(Garnet)은 캅카스/아르메니아산이다.
🇮🇷 이란 (페르시아): 보석 왕국의 심장
타브리즈, 야즈드, 이스파한 도시들에서, 산지 및 중계 보석으로 터키석의 이란 니샤푸르(Nishapur)가 세계 최대 산지이며, 루비, 사파이어: 인도·스리랑카산 보석이 페르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페르시아만 바레인산 진주는 세계 최고급이며, 에메랄드 수입품 (이집트/인도 경유)이다.
페르시아는 ‘보석 세공’ 기술과 ‘고급 보석 시장’으로 유명하여, 마르코는 이곳에서 다양한 광물, 귀금속, 상인 네트워크를 언급했다.
🌏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산지와 교차로
사마르칸트, 발흐, 카불 도시들에서, 중국–인도–중동을 연결하는 보석 운송 통로로써,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의  세계 유일의 고대 주요 산지로써– 아프가니스탄 바다크샨 지역이며, 비취(Jadeite) 는 소규모 채굴 및 교역 (주로 중국 내 수요)품이다.
🇨🇳 원나라, 대도/북경 ~ 제국의 보석 수요처
소비 중심지로 쿠빌라이 칸 궁정, 귀족, 불교 사찰 등이며, 중국 내 생산은 비취(Jade)로 주로 신장, 운남 지역에서 채굴 – 중국 귀족이 애용, 황옥(Topaz), 수정(Quartz)도 일부 산출되었다..그 외 루비, 사파이어, 진주는 인도/동남아에서 유입되고, 금과 은도 보석 세공에 쓰이며, 실크로드를 통해 대량 유입되었다.

⤵ 지역별 실제 보석 무역

🌐

지역 실제 보석 특징
이탈리아 진주, 자수정 무역 중심지
그리스 에메랄드, 사파이어 가공 기술 발달
이스라엘 진주, 홍옥수 해상 루트 연결점
튀르키예 터키석, 석류석 유럽으로 가는 관문
이란 터키석, 진주, 루비 광산 + 고급 시장
중앙아시아 라피스 라줄리 유일한 산지, 고대 교역품
중국(원나라) 비취, 황옥 소비 중심, 수입 보석 소비

20세기 들어, 화폐는 더 ‘안 보이게’ 되었다. 신용카드, 전자계좌, 은행 시스템은 화폐를 전산화하고 디지털화 되어, 중앙은행이 발행한 ‘실물이 없는 돈’이 가장 안정된 화폐가 되었다

⤵화폐 코드

⛓️ 블록체인 – 보이지 않지만 믿을 수 있는 돈, 비트코인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실체 없는 코드가 어떻게 화폐가 될 수 있지? 하지만 블록체인은 다시 신뢰를 기술로 구현한 구조였다.

중앙은행 없이도, 알고리즘과 분산원장이 위조와 부정을 막는다.
스테이블코인은 실제 화폐나 자산에 연동돼, 변동성 없는 디지털 화폐로 기능한다.

“이제 화폐는 코드가 되었고, 신뢰는 수학이 되었다.”

 

📌 ‘보이는 돈’에서 ‘보이지 않는 신뢰’로, 화폐의 본질은 모양이 아니라 신뢰다.
그 신뢰는 보석 → 금속 → 종이 → 디지털 → 코드로 계속 진화해왔다.

보이는 돈,무거운 돈: 고대 로마 제국 각 속주의 경상수입이 매년 1,500만~2,000 만 파운드 (금본위 제 시대의 파운드)정도....이를 로마 화폐로 계산하면 약 3.43억 ~4.58억 데나리온.
파운드의 유래는 중세 영국에서 고대 로마를 모방하여 은 1파운드로, 은화 240개를 주조했다는 데서 기인한다

시대 화폐 형태 신뢰 기반
고대 사파이어, 루비 등 보석 희소성과 권력
고대~중세 금화·은화 (녹일 수 있는 보석) 실물 가치와 주조 국가
근세 지폐, 어음 정부와 금융 기관의 약속
현대 디지털 화폐 은행 시스템과 규제
미래 블록체인 기반 화폐 수학적 정합성과 분산 구조

⤵마르코 폴로는 왜 원나라 대도(베이징)까지 갔을까?

13세기 유럽에서 “동방”은 신비와 부의 상징이었다. 그가 대도(元大都, 지금의 베이징)까지 갔던 이유는 단순한 모험심이 아니라 역사적·경제적 맥락이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 니콜로, 삼촌 마페오와 함께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에 도착하여 쿠빌라이 칸을 만났다. 그가 중국에 머문 기간은 약 17년(1275년경~1292년경)이며, 이 기간 동안 칸의 신임을 얻어 여러 임무를 수행했다.

 

대도까지 간 이유?

(1) 실크로드의 부활기

  •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지상 교역로가 안전하게 연결되었다. 몽골 제국(팍스 몽골리카) 덕분에 교역로가 안전해졌고, 베네치아와 같은 상인 공화국들은 막대한 부를 약속하는 동방 시장에 직접 접근하길 원했다. 베네치아 상인 가문이던 폴로 일가는 이 기회를 통해 중국의 비단·도자기·향신료 시장과 직접 연결되길 원했다. 폴로 일가는 상인 가문이었으므로 경제적 이익이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였다.

(2) 쿠빌라이 칸의 ‘세계적 제국’ 구상

  •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은 세계 여러 민족과 종교인을 포용하며, 유럽과도 외교를 시도했다. 마르코 폴로는 사실상 베네치아 상인 겸 서방 외교사절의 일원으로 대도에 초청된 셈이었다. 쿠빌라이 칸이 서방과의 교류에 열려 있었기에, 마르코 폴로가 '베네치아 상인 겸 서방 외교사절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그의 역할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지만, 그는 칸의 궁정에서 행정 및 특사 임무를 수행했으므로 단순한 상인 이상의 역할을 한 것은 명확하다.

(3) 서양의 호기심과 정보 욕망

  • 당시 유럽인들은 중국을 ‘황금의 나라’(Cathay) 로 상상했다. 그도 호기심과 정보 욕망이 있었다. 폴로의 여행기 《동방견문록》에 기록된 내용(석탄, 종이화폐, 거대한 도시 등)은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문명이자 충격이었으며, 이는 유럽의 지리적 상상력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기록이 훗날 대항해시대(콜럼버스, 마젤란) 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4) 유럽을 놀라게 한 신문물

 

  주제《동방견문록》의 기록 유럽인에게 미친 충격
화폐 종이 화폐(지폐):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에서 사용되던 종이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금화, 은화 등 귀금속 화폐만 사용하던 유럽에서는 믿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에너지 석탄은 중국 사람들이 '검은 돌'을 난방용 연료로 사용한다고 기록했다. 유럽은 주로 나무와 숯을 사용하던 시기였다.
도시 규모 항저우(킨사이)는 '천상의 도시'라고 칭하며, 그 크기, 번영, 수공업의 활발함을 상세히 묘사했다.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 거대한 규모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교통 중국의 대운하 시스템을 매우 정확하게 기술하며 물류의 효율성을 전했다.  
특산물 향신료, 비단, 도자기: 동방의 풍부하고 귀한 상품들을 언급하며 상업적 가치를 강조했다.  
석유 페르시아 근처(카스피해)에서 땅에서 솟아나는 검은 액체(석유)가 등잔에 사용된다고 기록했다. 석유를 본 최초의 유럽인 중 하나로 여겨..
지팡구(Zipangu)는 동방견문록에 처음으로 일본(지팡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일본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이 나는 섬'으로 묘사했으며, 이는 훗날 유럽인들의 황금에 대한 욕망을 자극했다. 그는 쿠빌라이 칸을 총명하고 관대한 지도자로 묘사하며, 원나라의 종교적 자유와 광대한 영토, 중앙아시아, 인도양을 항해한 경험까지 기록했다.

 

 

“오늘의 여행자 vs 마르코 폴로”

구분 과거(13세기) 오늘날(21세기)
목적 새로운 세계의 발견, 부와 정보 탐색 문화·역사·정체성의 다양성 체험
실크로드 (육로) 항공로·디지털 루트
상징 베이징의 쿠빌라이 궁정 대만의 민주주의, 티베트의 영성, 신장의 실크로드 유산
의미 세계의 ‘동쪽 끝’을 이해하려는 시도 세계의 ‘다양성’을 이해하려는 시도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 대도까지 간 이유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던 순간, 동양의 중심을 직접 보고 기록하려는 욕망”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가 대만, 홍콩, 티베트, 신장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서로 다른 문명과 정체성이 교차하는 ‘경계의 공간’에서 세계의 미래를 엿보고 싶기 때문이죠.

마르코 폴로의 귀환 여행 (바닷길)

1292년에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의 허락을 받아 베네치아로 돌아오기 위해 바닷길을 이용했다

왜 귀향했나? 몽골왕실의 서비스로 마르로폴로의 귀향길 -바닷길, 1294년

1290년대 들어 쿠빌라이 칸이 고령(80세 전후)에 접어들면서▶️ 후계자 분쟁, ▶️ 정국 불안, ▶️ 칸의 사망 가능성이 커짐.당시처럼 권력 교체기엔 외국인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됐다. 폴로 일가는 여러 차례 귀국 요청을 했으나 칸이 거절해왔다.→ 마르코는 유능한 외교사절 및 정보원으로서 칸의 궁정에서 쓰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 1292년경, 칸이 자신의 몽골 공주(콕친 또는 코쿨칸)를 페르시아로 시집보내는 외교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마르코 폴로 일가는 공주 호송 사절단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공식 귀국 허가를 받아낸다.

비교 이븐 바투타 마르코 폴로
📆 시대 1325~1354 (30년간) 1271~1295 (약 24년간)
🌍 여행 범위 모로코~중국, 인도, 동아프리카, 중동 (이슬람권 중심) 유럽중앙아시아중국(원나라)
📖 기록자 이븐 바투타가 구술 → 작가 이븐 주자이가 집필 구술 → 작가 루스티켈로 다 피사가 편찬
🧭 여행 목적 하즈(메카 순례), 관직 수행, 학문 탐구 상업 탐험, 쿠빌라이 칸의 외교 사절단 동행
🧠 기록 성격 이슬람 세계 내부의 묘사 (종교적·문화적 관점 ) 자기중심적 결혼 및 여성 서술, 개인 다처제·단기 결혼, 이혼, 반복 여행 동방에 대한 서구의 첫 통합 묘사 (지리·경제 중심)
💰여행자금출처 공직 급여, 이슬람권 환대, 선물(금·현물), 결혼 통한 자산 상인 가문 자산, 원나라 황실 후원(허가증), 교초(지폐) 보장, 보석 선물

⤵힘의 세계화 -13C vs. Now

왜 중동인가? 십자군-몽골

오늘날 중동을 (마르코 폴로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13세기 중동과 비교하고, 십자군과 몽골의 중동 개입을 분석할 수 있다.

당시 십자군은 이슬람 세계에 큰 혼란을 주었지만, 동시에 이슬람 세력의 단합을 촉진하기도 했다. 유럽이 성공하지 못한 힘의 패권을 몽골이 무너뜨린다. 몽골은 전례 없는 규모의 군사력으로 중동의 기존 질서를 파괴했다. 이는 당시 중동의 힘의 균형을 완전히 뒤흔든 사건이었다.

💎 “황금보다 두려운 침공” – 몽골과 십자군, 그리고 중동의 보석길을 뒤흔든 충돌
13세기 초, 세계는 마치 하나의 체스판 같았다. 유럽의 기사단이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하던 십자군 시대. 그런데 같은 시기, 반대편 동쪽에서는 몽골의 철기군단이 중동의 심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이 두 세력은 만나지 않았지만, 중동은 동시에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전례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보석과 금의 길’, 즉 세계의 가장 오래된 교역 축인 중동이 있었다.

💎몽골의 중동 침공 – “신 바빌론조차 잊혀지게 한 재앙”
몽골의 침공은 다른 지역에서도 잔혹했지만, 이슬람 세계에서의 파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중동 사람들에게 과거 최대의 참사는 바빌론 제국의 느부카드네자르가 유다왕국을 침공했던 사건이었다. 수천 년 간 이 이야기는 비극의 상징으로 회자됐다.
그러나 몽골군이 지나간 뒤, 바빌론의 기억조차 사라졌다. 그 정도로 파괴는 전례 없었다. 도서관은 불타고, 시장은 쑥대밭이 되었으며, 사파이어와 루비를 거래하던 수크(Souk)는 말 그대로 침묵의 도시가 되었다.

💎만약 십자군과 몽골이 중동에서 만났다면?
1218~1222년, 몽골은 이슬람 세계에 첫 공격을 가했다. 바로 십자군이 이집트를 공격하던 시기였다. 만약 몽골군이 그때 아랍 세계까지 진격했다면? 십자군, 몽골, 이슬람 간의 삼자 대결이 벌어졌을 것이고, 중동의 정치·문화 지형도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오일 머니가 아니라, 실크와 금, 보석이 오가던 시대, 몽골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흔든 파괴자였다.

🕌 코라즘 제국 – 실크로드의 중추를 잃다
몽골이 침공한 첫 이슬람 국가는 아랍이 아닌 코라즘 제국이었다. 이 제국은 아무다리야 강을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한 축을 이루며,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이란·아프가니스탄까지 연결된 ‘금-비단-보석의 길’을 통제하고 있었다.
몽골이 이 길을 장악하면서, 세계 화폐·보석 로드는 일시적으로 멈췄고, 중동은 무역 중심지에서 전장 한가운데로 추락했다.

💎‘길’ 위에서 역사가 바뀌다
보석과 화폐, 교역의 길은 단순한 상업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과 문명의 접점이자, 충돌의 무대였다. 그리고 13세기, 그 길 위에서 가장 거대한 충돌이 벌어졌던 것이다.

⤵화폐의 세계화 -13C vs. Now

사람들이 여행 이동을 자유롭게 한 13세기 몽골 제국은 특히 지폐의 등장과 광범위한 금융 네트워크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지폐 (본위제)의 탄생과 세계화의 시작』 ― 13세기 몽골에서 시작된 금융 네트워크, 그 찬란한 첫 페이지

“종이 한 장이 제국을 살리고, 또 망하게 했다.”13세기,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해 사용한 초강대국.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모빌리티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금융 세계화와 위기의 뿌리가 되었다면?

무분별한 발행 통제 실패로 인한 인플레이션, 중앙 정부의 통제력 약화, 그리고 미성숙한 경제 구조라는 한계에 부딪혀 결국 실패했다. 정교한 통화 정책, 국제적인 협력, 그리고 고도로 발달한 금융 시장을 통해 유지되고 있으나, 몽골의 실패는 현대 국가들에게 화폐나 금은 보석, 부동산의 신뢰성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교훈이 되었다.
이러한 무지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상인들은 가치가 떨어지는 지폐 대신 금, 은 같은 실물 화폐를 선호했다

🌍 세계화의 첫 페이지는 몽골에서 시작됐다
13세기 몽골 제국은 단순한 정복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동서 7,000km를 잇는 도로망을 만들었고, 각지에 도시와 역참을 정비해 사람·상품·정보의 흐름을 극대화했다.
관세 철폐로 마르코 폴로가 극찬한 바로 그 정책. 중간 통행세를 없애고 최종 판매지에서만 세금을 걷는 제도를 시행.단일 화폐 제도인(유로화 처럼) ‘교초(交鈔)’라는 지폐를 도입, 은화를 갖고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 지금으로 치면 ‘글로벌 무역자유지대’를 만든 셈.

💳 세계 최초의 지폐, 그리고 그 몰락
몽골(원) 제국은 지폐를 제국 전역에 강제 통용시켰다. 그러나…
교초는 은으로 교환이 가능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은 보유량이 줄고 남발되자 신뢰도가 무너졌다. 사람들은 지폐 대신 실물은 화를 원하게 되었고, 통화 신용이 붕괴-교초의 붕괴는 원 제국 몰락의 결정타 중 하나로 평가된다 (화폐 정책 실패로 인해 금속 화폐 체계로의 회귀를 촉발시켰다. 이는 명나라 초기 불환지폐(대명보초)의 실패로도 이어진다)
이것은 오늘날 화폐 발행량 조절 실패 → 금융 불안정과 본질적으로 같다.

📉 종이화폐와 금융세계화의 명암
17세기 유럽(예: 스웨덴, 영국)은 지폐 제도를 도입했고, 유대인 상인 중심의 어음·신용장이 사용됨.현대는 ICT와 교통 기술 덕분에 상품, 자본, 사람, 지식이 국경을 넘는다.그러나 자본 이동이 자유로워질수록 경제 위기와 가격 불안정성도 함께 커진다.
13세기 몽골에서 시작된 ‘통합된 시장의 꿈’은 21세기에 와서 ‘위험한 연결망’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금융위기를 보는 또 다른 눈
원나라의 통화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신뢰 없는 화폐 발행, 투기적 금융 시스템, 글로벌 연결성의 위험성.

“지폐는 편리하지만, 언제든 칼날이 될 수 있다.”지금 우리가 쓰는 화폐와 금융 시스템은 그 출발부터 제국의 몰락과 연결되어 있다.

📌 세계화의 역사, 다시 쓰다

구분 몽골 제국 (13C) 현대 세계화
교통 역참, 도로망 고속철, 항공
화폐 교초 (지폐) 디지털 화폐, 카드
무역 단일세금, 관세철폐 FTA, 관세 동맹
위험 신뢰 상실로 몰락 금융위기, 신용경색
성격 제국 주도의 세계화 자본 주도의 세계화

🔍 사실 검증

항목 사실 여부 설명
몽골 제국의 지폐(교초) 사용 ✔️ 실제 사용됨 (특히 원나라)
관세 일원화 및 단일세 적용 ✔️ 상업 활성화를 위해 도입
은 준비 없이 지폐 남발 ✔️ 신뢰 하락 → 통화붕괴
현대 세계화와 연결 🔶 역사적 연관은 있지만, 해석이 필요
스웨덴 지폐(17C) 최초 ✔️ 유럽에서 최초 지폐 발행 (1661년, 스톡홀름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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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스테이블 코인 vs. 알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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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알트코인 [알트코인(Altcoin):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의 총칭.⏩ "Alternative Coin"의 줄임말로,비트코인의 대안(alternative)으로 등장한 코인을 의미] 을 쓰레기라고 부르지만, 정말 돈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 "쓰레기 코인도, 누군가 믿고 쓰기 시작하면 돈이 될 수 있다." 신뢰, 수용, 사용처—이 세 가지가 갖춰지면 돈이란 지위는 얻어지는 것이지, 돈이 아니라고 고정된 게 아니다.
세상의 여러 돌들 중에 이처럼 보석으로의 가치를 갖게 된 이유는 선택이다. 선택되는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변동이 적어서 거래 활성화에 기여한다.

💎몽골의 교초가 망하자 제국이 무너졌지만,

오늘날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사(플랫폼)가 망해도 달러가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제는 국가가 아닌 달러가 만든 디지털 제국이 유지되는 것이다.

원화는 이 구조에 진입하지 못한 채, 글로벌 신뢰 네트워크 밖에 머무른다.

🌐 결국 ‘디지털 달러 제국’이 도래하는가?

USDT, USDC, PYUSD, FDUSD… 달러의 신뢰만을 가져와 만든 전부 달러 기반이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발행하지 않았지만, 달러가 ‘비공식적으로 세계 디지털 통화’가 되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디지털 화폐 영역에서조차 달러만이 신뢰를 지탱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그래서 “1인 제국 = 디지털 달러”라는 표현이 성립한다.

화폐도 보석도 언제나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다.

📌 제국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에 무너진다- 제국이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듯, 무너진 코인 뒤에도 새로운 디지털 질서가 떠오른다.

⤵보석과 코인

💎 보석과 코인 – 가치 구조 비교표

유형 암호화폐 보석에 비유 보석 브랜드에 비유 설명
비트 코인 비트코인(BTC) 순금 🪙 골드바(금괴)/ 불가리 하이주얼리(투자형 보석 : 장인수공업,가격 보존력·희귀성 제품, 예: 루비+에메랄드, Magnifica,Eden) 탈중앙 희소 자산, 가치 저장
알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솔라나(BTC의 대체가능 코인) 다이아몬드·사파이어 💍 티파니(Tiffany) / 까르띠에(Cartier) / 불가리(Bulgari) 실질적 기능과 시장 신뢰를 갖춘 보석처럼, 기술 기반이 명확하고 가치 저장 및 활용성을 가진 암호화폐
밈코인 도지코인, 시바이누,페페 가짜 보석, 유행성 액세서리 💫 스와로브스키(Swarovski) / 판도라(Pandora) 웃음·밈에서 탄생한 코인, 희소성보다 감성·집단심리 중심의 가치 부여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T, USDC 표준화된 금괴(인증된 보석) 달러 기반, 실물 화폐 1:1 담보 기반, 신뢰와 안정성 중심, 가공된 자산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DAI, UST 등 인조 보석(합성 보석) 🔧 모이사나이트(합성 다이아) / 라보 다이아 수학·알고리즘으로 가치를 모방하나, 신뢰 기반이 외부 자산이 아님 → 불안정성 존재

브랜드의 성격과 시장에서의 역할(포지션)에 따라 암호화폐와 ‘기능적 대응’으로 비교한 것이다.

  • 이더리움은 기능성과 희소성을 갖춘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같고, 도지코인은 유쾌하고 예측불가한 판도라 참처럼 흘러다닌다. 스테이블코인은 불가리의 골드처럼 묵직한 신뢰를, 알고리즘형은 라보다이아처럼 빛나지만 깨지기 쉬운 긴장을 안고 있다
  • 불가리는 투자형 보석 라인을 갖추고 있으며, 클래식하면서 신뢰감 높은 이미지/ 까르띠에는 오랜 전통과 장인 기술, 심지어 실용성과 투자 가치까지 갖춘 브랜드로 대비 된다.

암호화폐 시장은 보석 진열장과 닮았다. 어떤 코인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가치를 담고, 어떤 코인은 유행 장신구처럼 반짝였다가 사라진다.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은 겉은 보석처럼 보이나 내면은 시스템 계산에 의존 → 구조가 무너지면 가치 붕괴 (예: 루나-UST 사태)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희소성’이 아니라 ‘신뢰’다. 가짜 코인, 가짜 보석, 가짜 돌이 넘쳐나는 세상. 지금 유통되는 것의 90%가 진짜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가까 코인

CoinMarketCap 기준으로 등록된 암호화폐 수는 2만 개 이상이며,
이 중 대부분은 유통량도 적고, 기술적 기반도 부족하며, 사실상 사기(SCAM)에 가깝다.

  • 블룸버그, 체이널리시스 등의 분석에 따르면 ICO(Initial Coin Offering)의 80% 이상이 실패하거나 사기로 끝남
    → 신뢰 기반이 없는 수많은 '가짜 화폐'들이 존재함..

솔라나가 “초고속”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머릿속에선 인플레 토큰 아니야?

→ 지갑 열 때마다 의심부터 하고, 거래할 때마다 확인부터 해 !

 

과거 로마시대처럼, 한 번 도금된 은화(1 데나리우스)로 사기 당한 사람은 새 은화(코인)가 나와도, “또 속이려는 거 아니야?” 하고 끝까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은화개혁을 할 수 없게 되고, 솔리두스(금화)개혁으로 간신히 금과 구리만 살아남게 된다. 여전히 은화는?

 

다른 왕국 다른 중세 시대가 되서야,  8세기 샤를마뉴(카를 대제) 794년 때에 로마에서 사라진 은화(1 데니아)가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또 다시 봉건 영주들이 각자마다 각기 다른 도금 은화로 가짜로 전락시키게 된다.

결국, 8~13세기 무역의 중심이 유럽 국가들에서 이슬람 국가들로 전환되게 한 이유이다? 1 디르함 (순 은화) 1디나를(순금)이 국제거래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모조 보석

합성 다이아몬드 최근 10년 사이, 랩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부 산업 보고서는 2025년 기준 신제품 중 70~80% 이상이 합성이다.

  • 모조 보석 시장~ 크리스털, 유리, 코팅 보석 등 전 세계 보석류 소비량의 80~90%를 차지한다는 추정..

마르코 폴로는 그 당시 보석의 “출처, 희귀성, 용도”에 집중했지만, 기록에" 드래곤의 이빨이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사실은 생물의 뼈이지만 루비처럼 높은 값에 팔린다" "황제는 홍산에서 나는 흑진주(남태평양의 검은입술조개(Pinctada margaritifera)에서만 나옴)를 매우 귀하게 여긴다. 그 진주는 너무나 드물어서 진위를 가리기도 어렵다" 지금 다이아몬드 최대 가공 생산지 중 하나인 인도의 독수리로부터 다이아몬드 채굴한 것 등..

결국 마르코폴로 그 시대의 보석도 희소성보다 신뢰로 가치가 정해졌던 셈이다

Bulgai-hijewely